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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인생의 반전, “성공이든 실패든 해봐야 알죠”


인생엔 높낮이가 있다. 술술 잘 풀릴 때가 있으면 반대로 뭘 해도 안 되는 시기가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다. 잘 나갈 때는 수면 아래 위험을 대비하고 못 나갈 때는 봄날을 기약하며 인내해야 한다.

박혜림이란 이름을 네이버에 치면 홍콩 배우 진혜림을 닮은 얼굴에, 멋진 이력이 기재된 화면이 뜬다.

네이버 인물검색 /사진=네이버

얼핏 화려해 보이는 이 이력 뒤에는 숨겨진 인생의 굴곡이 있다. 부모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재수 끝에 대학에 들어가고, 뒤늦게 적성을 발견해 인생의 진로를 바꿨다. 갑자기 찾아온 병마와 싸우느라 젊음의 한 구간을 방 안에서만 보내야 했다.

추락한 자존감을 회복하기 위해 낯선 영역에 들어가 자신을 테스트했다. 그러다 남들이 만류하는 창업에 나서 쉴 틈 없이 일에만 매달리고 있지만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이야기하는 박혜림 대표.

‘라이프는 점프하는 것이다’를 숨겨진 구호로 삼고 있는 라이프점프가 그를 마지막 창간기념 인터뷰이로 모셨다.

- 이런 말을 드려도 될지.. 미모가 뛰어나다. 닮은 연예인이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일단 감사하다. 인도계 외국인? (하하)


- 그런 것 말고 좀 더 구체적으로 연예인이 있을 것 같다.

“아, 지금보다 어렸을 때 홍콩배우 진, 누구더라.”

- 아, 진혜림? 진짜 닮았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같다. (하하) 혹시 외국에서 태어나거나 거주경험이 많으신 건가.

“아니다. 27살에 통역사가 되고 싶어서 미국 유학 갔는데 그때 처음 여권 만들고 해외에 나가봤다.”

홍콩배우 진혜림 /사진=영화‘냉정과열정사이’

- 27살에 통역사가 되기 위해 유학을 갔다면 좀 늦은 나이였던 것 같은데.

“그렇다. 적성을 뒤늦게 발견했다. 대학 졸업하고 대기업 취업해서 일하다가 통번역 일을 접하게 됐는데 그때 결심했다. 이 일을 꼭 해보자고.”

- 자, 이야기가 새기 전에 일단 자기소개부터 하고 시작하자.

“유니콘즈라는 영어교육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 창업가 박혜림이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대기업 다니다 뒤늦게 통번역 일이 하고 싶어서 유학을 갔다. 통역사로 활동하다가 외국계 HR 회사에서 근무했고 3년 정도 있다 퇴사한 뒤 지금의 회사를 차렸다.”

젊은 세대의 표현을 빌자면 박 대표는 ‘연반인(연예인+일반인)’이다. 본격적으로 연예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차례 방송을 타면서 유명세를 얻었다. 뷰티워에서는 톱3 진입, KBS 남자의 자격에서 야구선수 양준혁과 소개팅 파트너, 슈퍼스타K3에서 미국인 출연자 동시통역, 평창올림픽유치위원회 전속 통역사 등의 활동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방송 출연 당시 박혜림씨 /사진=남자의자격, 슈퍼스타K

- 전공과 무관하게 영어와 관련된 일을 주로 해오셨는데.

“대학 때 교환학생 대상의 외국어 봉사활동을 했는데 그때 영어사용의 재미에 푹 빠졌던 것 같다. 꼭 영어여서가 아니라 영어라는 수단을 통해서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는 것이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소통하는 게 즐거웠고 상대방의 문화나 사고방식이 언어에 녹아 나오는 지점에서 희열을 느꼈다. 신촌이나 이대에 있었던 언어교환 카페를 드나들었고 영어실력을 쌓을 수 있었다.”

- 영어 말고 다른 제2외국어를 공부 할 생각은 안 해봤나?

“안 해봤다. 나는 언어에 엄청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외국어 배우는 것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것보다 통역하며 사람들의 생각을 이해하고 생각을 전달하는 데서 차이점을 발견하는 게 재밌었다. 아마 영어가 꼭 미국 사람만 사용하는 언어가 아니라 다양한 국적과 소통하는 유일한 언어여서 그런 것 같다”

- 인터뷰 오기 전에 평판조회(?)를 좀 해봤는데 통역사 시장에서 꽤 유명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하) 감사하다. 그냥 스킬이 좀 생겼을 뿐이다. 사람들에게 좀 알려지게 된 계기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통 생각하는데 사실은 아니다. 미국 대학원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일하다 건강에 이상이 생겼었다. 황반원공이라는 병에 걸려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와중 ‘뷰티워’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뭐라도 해보자’란 마음에 지원했다가 탑3까지 가게 되었다. 그 계기로 대중에게 좀 알려지게 된 것 같다.”

/사진=위키백과

- 황반원공?

“망막에 구멍이 생기는 질환이다. 32살 때였는데 수술하고 재활하는 과정에서 6개월을 쉬었다. 지금은 편하게 말할 수 있는데 그땐 정말이지 힘들었다. 망막에 관을 삽입하는 큰 수술이었는데 재활이 특히.. 상처부위에 재생가스를 넣어주는데 가스가 공기보다 가벼워서 하루 종일 엎드려 있어야 한다. 6개월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깐 자존감이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 말만 들어도 고통이 전해진다. 왠지 오뚝이처럼 일어섰을 것 같은데.

“집에만 틀어박혀 있던 와중에 ‘뷰티워’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됐다. 이 프로그램이 30대 이상 여성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는 컨셉이었는데 그때 제가 32살이었다. ‘자존감 회복이 가능하다면 뭐라도 해보자’란 마음에 지원했다가 탑3까지 올랐다.”

- ‘뷰티워’에선 어떻게 탑3까지 가게 됐나?

“처음 대기실에선 ‘하지 말까’란 생각을 백번도 더했다. 그런데 당시 자신감 회복이 간절했다. 지원하게 된 계기도 우연히 본 TV에서 MC인 강수정의 ‘자신감을 회복하세요’란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기 싫었다. 계속 기다렸고 중간에 말도 안 되는 장기자랑도 많이 했다. 최선을 다해 시키는 것을 다 하다 보니 어찌하다 탑3까지 갔다.”



- 말도 안 되는 장기자랑이라니 꼭 찾아보고 싶다.

“(하하)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 조를 지어 춤 추고 노래하고.. 지금은 못 볼 것 같다.”


- 그래서 자존감 회복은 됐던 건가.

“그렇다. 나 자신을 드러내고 무대 위에 올라서 평가 받고, 이런 것을 인생에서 처음 해봤는데 결과가 좋아서 그랬을까. 자존감 회복에 큰 도움이 됐다. 그런 후에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회에 지원했다. 처음에는 탈락했는데 적격자가 나타나지 않아 어부지리 끝에 합류하게 됐다. 운이 좋았다. (하하)”

-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유학, 통역사 일에 HR 회사, 뷰티워, 평창 유치위까지. 남들보다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모두 스스로 찾아간 과정인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이 조금씩 달랐는데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은 공통적이었다. 인생의 반전은 스스로 만드는 것 같다. 회사 나와서 유학 가고, 직업 바꾸고, 나라 일(평창유치위)도 해보고. 난 적성을 늦게 찾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또 다른 적성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하고 싶은 찾아 하면서 다양한 사람을 만났고 각기 다른 사고방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어떤 목적이나 기준에 무슨 결정을 내리는 사람인지, 어떤 걸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

- 원래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꼭 하는 성향인가?

“내가 원래 ‘똘끼’가 좀 있다. (하하) 그리고 꽂히는 데도 이유가 있다고 스스로 믿는다. 그러니 기업에서 고분고분 말 잘 듣고 그게 당연히 잘 안된다. 조금 부끄럽지만 ‘세상을 통역하다’란 책도 출간한 작가인데. 책 쓴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네가 책?“, 이러면서 조금 무시하는 듯 이야기를 하는데 신경 안 썼다. 나를 기록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틈틈이 글을 써서 결국엔 책을 냈다.(하하) ”



- 회사생활할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렇지. 스위스계 HR 컨설팅 회사에서 일할 때 당시 서울 지사장으로 계시던 분이 ‘왜 사업을 안 하냐’고 물으셨다. 사업에 ‘사’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때라 ‘나가란 얘긴가’ 싶었다. 알고 보니 그분이 인재를 놓고 평가하는 위치에 오래 계신 분이라 그때 내 성향을 보고 기업에 소속돼 조직원으로 살아가는 게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거다. 결국 그렇게 됐다.”




- 지금은 ‘유니콘즈’라는 기업의 대표다. 창업은 어떻게 하게 됐나?

“동계올림픽 유치위에서 일하다가 35살에 정도에 나와 사업자 등록을 했다. 개인사업자로 7년 차다. 3~4년 정도는 통역 쪽으로 프리랜서 비슷하게 일을 했고 중간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회에서 전자책 쪽 제작을 경험했다. 지금은 ‘칼라스’라는 비즈니스 회화 콘텐츠 관련 사업을 추진 중이다.”

- 유니콘즈에는 몇 분이 같이 일하고 있나?

“지금 6명과 함께 일한다. 처음에는 다 내 돈으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조금씩 투자를 받고 있다”

- 유니콘즈는 영어교육 관련 콘텐츠 기업이다. 최근에는 비즈니스 회화 수업에 몰두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한국 사람들은 왜 영어를 어려워하는 걸까.

“EFL(English as Foreign language) 환경이어서 그렇다. 영어가 제2의 언어가 아닌 ‘외국어’로서의 지위를 가져서 그렇다는 뜻이다. 영어가 제2의 언어인 인도 등의 나라에서는 모국어로 얘기하다 영어로 얘기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누가 한국어로 얘기하다가 영어로 얘기하면 다 쳐다본다. 영어에 대한 콤플렉스가 기본적으로 있는 상황에서 굳이 일상에서 영어를 섣불리 했다가 실력을 평가받을 거라 생각하는 것 같다. 약점을 보이고 싶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영어를 잘 안 쓰게 된다. 그러니 못하게 되는 거다.”

- 그렇다면 라이프점프의 타겟층인 4050도 영어 지금부터 배우기 시작하면 잘할 수 있나?

“충분히 가능하다. 나도 유니콘즈의 강사진으로 있지만, 성인이 돼 영어를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4050 임원분들을 교육하다 보면 본인이 언어적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신다. 그렇지 않다. 처음에 환경만 세팅해놓고 의식적으로 습관화하면 충분히 잘할 수 있다. 다이어트랑 똑같다. 2개월 정도만 고생하고 다음부턴 습관에 맞춰나가는 거다. 하다 보면 속도가 붙는다.”



- 대표님도 당시 27살이라는 나이에 유학을 떠나 통역사가 되는 일이 쉽진 않았을 것 같다. 그때의 성장통이 대표님에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뭔가?

“무식한 방법일 수도 있는데 일단 해봐야 안다는 거다. 자기를 괴롭히는 여러 가지 머릿속 생각들이 누구나 있다. 그런데 머릿속이 복잡한 건 안 해봤기 때문에 결론이 안 난 것이다. 결론이 안 나니 생각의 부산물들이 남아 머릿속을 괴롭히는 거다. 실패든 성공이든 일단 해봐야 결론이 난다.”

- 마지막 질문이다. ‘이런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모습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는가에 신경 쓰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그냥 내가 나를 늘 본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가 나에게는 가장 중요하다. 지금의 나는 꽤 괜찮다. 방향을 많이 잡았고 시행착오도 많이 했지만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 20대에 지금보다 더 날씬했고 좀 더 주름살이 없었을 테지만 지금의 내가 더 좋다.”
/박해욱기자 spooky@ /조민교기자 mink94@

박해욱 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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