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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 ⑦] “사업이란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때 성공하는 것.”

  • 원부연 객원기자
  • 2020-04-04 10:00:15

창업을 넘어 ‘창직 하는 사람(Job Creator)’들이 늘고 있다. 끊임없는 세상의 변화와 새로운 것들이 넘쳐나는 시대, 회사에서 찾지 못한 직업 정체성에 대한 숙제를 개인들이 스스로 고민해 찾게 된 것이다. 이들은 스스로의 직업을 새롭게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원부연의 직업의 탄생’은 스스로 창직을 한, 나만의 단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개인과 산업 두 영역에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두 번째 커리어를 꿈꾸는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인사이트를 전하고자 한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던전앤파이터’ 총괄 디렉터에서 ‘위메프’ 창립멤버로, 이후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 ‘제이앤 제이슨’으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든 서광운.

그는 꽤나 파란만장한 길을 걸어왔다. 시작은 영화 잡지사였다. 영화를 좋아해 대학 졸업 전 웹사이트 관리자로 ‘씨네 버스’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졸업 시점 인터넷 붐과 함께 게임 회사 개발자로 경력을 시작하며 글로벌 히트작 ‘던전앤파이터’ 총괄 디렉터가 됐다.


‘던전앤파이터’를 만든 ‘네오플’이 ‘넥슨’으로 인수되면서 또 한 차례 변화가 찾아왔다. 그 때 내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시작했다. 당시 해외에서 소셜 커머스가 유행이었고 이를 국내에 접목해보자는 아이디어가 ‘위메프’라는 브랜드가 됐다.


‘위메프’의 성장에만 집중하며 앞만 보고 달렸다. 1,000억원 투자 유치 등 회사는 커졌지만 그는 또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었다. 문득 좋아하는 음악을 새로운 형태로 ‘보여줄’ 공간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했다.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 ‘제이앤 제이슨’은 그렇게 시작됐다.





졸업 전, 영화 잡지사에 취직하다


- 초등학교 때 배드민턴 선수였다고?


“어렸을 때 운동신경이 좋았는데 그걸 보고 선생님께서 권했다. 초등학교 때 선수로 활동 하다 중학교 입시를 준비하며 포기했다. 체육 중학교 지원이 잘 안되기도 했고, 무릎도 안 좋았고.”


- 대학 때 전공은 무엇이었나?


“산업공학과를 전공했다. 운동을 그만두다 보니 공부에 집중하게 되었다. 공대가 가고 싶었고, 딱히 어떤 구체적인 직업을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영화 잡지사를 졸업 전 입사했다.


“‘씨네 버스’라는 영화 잡지사에 웹사이트 관리자로 입사했다. 대학 공부에 의미를 못 느껴 그만 다닐까 하던 중 이었다. 기술직으로 입사했지만 작은 회사다 보니 이일 저일 도울 일이 많았다. 촬영 보조도 하고 기사도 한 꼭지 담당했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코너였다.”


- ‘씨네 버스’는 어떤 회사였나?


“조용원이라는 배우 출신이 대표였다. 일본에서 유학하다 귀국 후 ‘원앤원픽쳐스’라는 회사를 차렸는데 그 중 한 부서였다.”


- 원래 영화를 좋아했는지?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너무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게 중학교 때 한 달 용돈이 5천원이었는데 당시 용돈을 ‘로드쇼’와 ‘스크린’, 두 잡지를 사는데 썼다. 그때 잡지가 4,500원 정도였으니 거의 전 재산을 영화에 쏟아 부은 거다. 그렇게 3년간 잡지를 모았다.”


-연봉은 어느 정도 받았나?


“당시 기자 분들 월급이 80만원 정도였다. 그나마 나는 기술직이라 월 120만원 정도 받았고. 한국 영화 전성기였던 상황이라 연봉이 적어도 들어오고 싶어 줄 선 사람들이 많았다.”


- 1년 만에 잘렸고, 덕분에 무사히 졸업했다고?


“1년 정도 다니다 그만뒀다. 회사가 어려워졌거나 비전이 없어서는 아니었고, 사내 연애한다는 이유로 잘렸다. 사실 여자 친구가 잘린 거였는데 괜히 울컥해서 나도 그만 뒀다. 학교 가기 싫어 취직했는데, 1년 만에 그만둬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덕분에 졸업도 무사히 했고.”


- ‘씨네 버스’ 멤버들과는 지금도 만난다고?


“지금까지도 멤버들과 종종 만난다. 함께 영화에 빠져있던 사람들이라 더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금 ‘제이앤 제이슨’을 함께하는 제이도 당시 ‘씨네 버스’ 디자이너였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서 씨(왼 쪽에서 두번째)는 지금까지도 '씨네 버스' 멤버들과 좋은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커리어, 게임회사 디렉터


새로운 커리어, 어떻게 방향을 잡았는지?


“인터넷 분야에 관심이 있었는데, 가만 보니 관련 회사들의 매출이 대체로 높지 않았다. IT 업계 중 자체 수익 모델을 제대로 갖춘 회사도 별로 없었고.”


- 그래서 게임 회사를 선택했나?


“게임 분야를 보니 매출과 수익모델이 분명했다. 그래서 게임 회사로 가야겠다 결심했고. 개인적으로 게임을 좋아하기도 했다. 영화랑 게임은 비슷한 속성이 많더라.”


- 처음 입사한 회사는?


“‘조이온’이라는 회사였다. ‘거상’이라는 게임으로 유명했고. 당시 프로그램 담당(개발자)을 1년 반 정도 하다 디렉터가 되었다. 전체 게임 기획 및 프로젝트 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 그 다음 회사가 ‘네오플’이었나?


“그렇다. 당시 ‘쿵쿵따’ 게임으로 뜬 회사였다. 창립 멤버들의 실력으로 좋은 회사 분위기와 시스템을 갖춘 상태였고. 그런데 아쉽게도 ‘쿵쿵따’가 채 1년을 버티지 못한 채 하강했다. 200명 직원이 40명까지 줄었다.”


- 분위기 안 좋을 때 이직을 생각했다.


“내가 가서 살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마음으로. 사실 좋은 사람들과 시스템, 인프라가 갖춰진 회사니 금방 터닝 포인트를 찾겠다 싶었고. 그렇게 비전을 믿고 전략적으로 지원하게 됐다. 어차피 인생은 도전이지 않나.”


- 경력직 지원은 어떻게 했나?


“신기하게도 ‘씨네 버스’ 때 알던 친한 형이 마케팅 담당으로 재직 중이었다. 그 형을 통해 입사하고 싶다는 의지를 밝혀 두었고 자연스레 연결 되었다. 웹서비스 담당 디렉터 직책으로 ‘캔디바’라는 게임 포탈 총괄을 담당하게 되었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야근을 해도 워라밸이 없어도 즐거웠던 게임회사 시절.



'던전앤파이터' 총괄 책임자가 되다


- ‘던파’ 팀으로 가고 싶었던 이유는?


“‘던파’ 팀 팀웍이 너무 좋았다. 사내에서는 ‘신야구’가 더 흥행했지만 나는 왠지 이쪽 팀에 더 끌렸다. 당시 김윤종 게임 디렉터가 총괄이었고. 나는 라이브 서비스를 담당하기로 했다.”


- 라이브 서비스라는 건 뭔가?


“게임은 완성 없이 계속 진행되는 형태다. 그래서 상황에 맞춰 고객 관리를 해야 한다. 게임의 기술 버전을 만드는 총괄이 김윤종 디렉터라면 소비자가 이탈하지 않도록 여러 서비스를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이후 김윤종 디렉터가 개발팀으로 가면서 ‘던파’ 총괄을 맡게 됐다.”


- 게임 회사에서 일한다는 것, 힘들었던 점은?


“워낙 열악했고 힘들었다. 그런데 영화처럼 게임도 정말 이 분야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더라. 밤새 일하고 회사에서 자도 즐거웠다. 스트레스도 게임하며 풀었다.”


- 인센티브도 많이 받았다고?


“예전에는 성공에 따른 인센티브가 정말 많았다. 위험한 만큼 포상도 많은 분위기였고. 사실 게임이라는 게 100개 만들어야 하나 성공할까 말까다. 그래서 요즘 게임회사들은 게임 하나가 터져도 다른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니 인센티브가 적을 수밖에 없다.”


- 그러다 2008년 회사에 큰 변화가 생겼다.


“‘던파’가 국내 매출로 절정일 때 ‘넥슨’에 매각되었다. 인수됐지만 ‘던파’가 메인 게임이었기에 실력도 인정받고 대우도 좋았다. 그런데 ‘던파’는 내가 2010년 퇴사한 후 더 잘됐다.”


- 왜 3년 만에 다시 퇴사 했는지?


“‘넥슨’에서의 3년은 즐거운 회사 생활로 남아있다. 정말 좋은 자리도 제안 받았지만, 새로운 도전과 모험을 하고 싶어 그만둬야겠다 결심했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늘 팀웍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함께 게임을 만든다는 게 가장 행복했다.



소셜 커머스 '위메프'의 탄생


- 새로운 도전, 무엇이었나?


“게임 업계 몇 멤버들과 뭔가를 만들어보자며 의기투합했다. 당시 쇼핑팀과 게임팀을 계획 중이었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쇼핑 팀을 선택했다. 김윤종 디렉터는 게임 팀으로 갔고.”


- 소셜 커머스 아이디어를 낸 계기는?


“초창기에는 쇼핑이라는 카테고리만 정해진 상태였다. 당시 ‘그루폰’ 사이트를 보며 소셜 커머스를 해보면 어떻겠나 제안 했지만, 처음에는 다들 시큰둥했다. 그러다 2010년 5월 ‘티몬’이 오픈 했고, 이후 사람들의 입장이 달라졌다. 바로 준비에 들어갔고 ‘위메프’가 런칭됐다. 초창기 나는 ‘위메프’ 쇼핑 부서의 전체 총괄 이사를 맡았다”


- 첫 시작, 성공했는지?


“‘에버랜드’ 자유이용권을 반값에 팔았는데 바로 터졌다. 사실 이걸 다 팔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다. 수량은 10만장이나 됐고 하루 만에 팔아야 했으니까. 10만장을 통 선급으로 사면서 하루가 지나면 못 팔게 계약된 위험한 형태였다. 다행히 오픈 후 10시간 만에 완판 되었지만.”


- 이후부터 두려움과 걱정이 생겼다고?


“초창기 성공의 기쁨도 잠시였다. 너무 터지니까 오히려 어안이 벙벙했다. 이후 나 스스로에게 어떤 두려움이 생겼다. 과연 내가 이 사업을 감당할 수 있을지 막막했고. 마치 모르는 세상에 갇힌 기분도 들었다.”


- 당시 회사 분위기는 어땠나?


“그야말로 좌충우돌이었다. 사실 소셜 커머스는 완판을 해도 남는 게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 의견들이 치열하게 오갔다. ‘티몬’, ‘쿠팡’과의 경쟁도 극심했고. 하루에 2천개 이상 상품이 쏟아져 나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결국 외부에서 전문 CEO를 모셔왔다.


“큰 기회였던 만큼 힘든 지점도 많았다. 내 능력 밖의 것들이 갈수록 늘어났고. 결국 쇼핑 분야에 정통한 외부 CEO를 모셔왔다.”


- 어떤 지점이 특히 힘들었나?


“게임 업계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쇼핑은 유통이고, 유통은 실적이 우선이다. 그러다보니 나포함 초창기 멤버들이 힘들 수밖에 없었고. 초기 아이디어와 그림은 잘 그려도 정작 달려야 할 때 뒷심과 노하우가 부족했다.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위메프’ 쇼핑 팀에서 3년을 일하는 동안 머리가 백발이 됐다.”


- ‘위메프’를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강북 쪽 사무실을 알아본 후 직원들이 계약을 했는데 놀랍게도 ‘씨네 버스’와 같은 사무실이었다. 이 사실을 알고 가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더라. 영화 ‘인턴’에서 로버트 드니로가 부사장까지 역임한 회사를 인턴으로 다시 갔을 때 느꼈던 기분과 비슷하지 않을까.”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가장 힘들었던 ‘위메프’ 시절. 덕분에 나에 대한 고민을 깊이 해볼 수 있었다.



다시 게임으로, 다시 '서광운'으로


- 다시 게임으로 돌아갔다.


“당시 ‘던파’ 디렉터였던 김윤종이 ‘최강의 군단’을 만들 때 게임 팀 사업 총괄 이사로 합류했다. 그런데 이 게임이 생각보다 잘 안됐다.”


- ‘최강의 군단’이 잘 안됐을 때의 기분은?


“현타가 세게 왔다. 원래 잘 하는 게임으로 돌아왔는데 시작부터 들어맞지 않더라. 내가 알고 있는 게임의 공식과 문법을 과연 요즘 소비자에게 맞출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고.”


- 개인적으로 깨달은 바가 있다면?


“시대를 넘나드는 스테디 셀러까지는 못 만드는 사람이구나. 하나의 히트송만 가진 반짝 가수 같은 기분. 한때 잘 한다고 느꼈던 마음, 잠시의 성공도 결국 운 때문이었나 싶었다. 내가 굉장한 착각을 하고 살아온 기분이었다.”


- 삶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나?


“2014년 쯤 앞으로 뭐하고 살아야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 시기에는 게임도 왠지 하기 싫었고. 잘 한다는 칭찬만 받다보니 잘한다고 착각한건 아닐까 의심도 됐고. 그래서 나에 대한 깊은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실적에 상관없이 내가 꾸준히 좋아할 수 있는 건 무엇일지.”


- 좋은 단서를 찾았는지?


“아주 어린 시절 부터 나를 여러모로 돌아보았다. 그러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영화만큼 음악을 좋아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자연스레 디제이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 갑자기 음악에 빠진 이유는?


“사실 음악을 영화만큼이나 좋아했는데 사업하며 머리가 하얘질 때까지 음악을 아예 안 듣고 살았다. 일단 좋아하는 음악을 디제이로 표현 해보고 싶었다. 시간 날 때마다 집에서 디제잉 연습을 하며 다양한 음악을 들었다. 2년 정도 독학 해보며 잘 할 수 있을지 테스트 해봤고.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질리지 않고 오히려 더 좋아졌다.”


- 그러다 회사를 쉬기로 했다고?


“2017년에 1년 정도 회사를 쉬고 싶다고 이야기 했다. 쉬는 동안 디제잉하며 돈도 좀 벌어야지 하는 마음에 가게 오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백발이 될 만큼 모든 에너지를 쏟았기에 지금의 ‘제이앤 제이슨’을 만들 수 있었다.



'제이앤 제이슨',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


- ‘워칭 뮤직 라운지’ 컨셉을 생각한 계기는?


“음악을 공부하는 동안 주로 유튜브를 활용했다. 그런데 듣기만 할 땐 다소 아쉬운 곡도 뮤직비디오로 보니 꽤 괜찮은 느낌이었다. 보는 음악의 시대, 음악도 보는 재미가 있다면 더 잘 들을 수 있지 않을까.”


- 새로운 형태의 믹스다.


“듣는 음악, 보는 음악, 이를 어떻게 하면 나만의 스타일로 만들까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아티스트의 노래만 나오는 게 아니라 영상으로도 나오되, 그 공간 전체가 아티스트의 이미지로 채워지는 형태를 고민했다. 그래서 한쪽 벽면 전체를 이미지로 채울 수 있게 디자인해 보았다.”


- 어떤 식으로 음악을 보여주려 했는가?


“당연히 있는 곡을 그냥 틀 생각은 없었다. 우선적으로 틀고 싶은 곡을 편곡했다. 장르를 정하고 그 장르에서 유명한 곡들을 수집하고, 대표 아티스트들은 별도로 이미지 작업을 했다. 이미지 관련 작업은 디자이너인 제이가 담당하고, 디제잉 및 편곡은 나 제이슨이 맡았다.”


- ‘씨네 버스’ 인연이 여기까지 왔다.


“오랜 친구였고 틈틈이 나눈 이야기들이 지금의 ‘제이앤 제이슨’이 됐다. 제이는 디자이너로 본인 사업을 하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제이앤 제이슨’이 본업이 됐다.”


- ‘제이’와 ‘제이슨’, 둘의 이름이 곧 브랜드가 되었다.


“나와 제이의 영어 이름을 합한 게 정말 우리만의 브랜드가 됐다. 가게에서는 서광운이라는 이름보다 제이슨으로 더 많이 불린다.”


- 오픈 자금은 얼마가 들었나?


“‘제이앤 제이슨’ 1호점을 8천만원 예산으로 시작했다. 보증금 3천만원에 인테리어 비용 5천만원. 30평대 공간에 음악 장비까지 이 예산으로 처리해야했기에 셀프 인테리어를 감행했다.”


- 처음엔 엉망 그 자체였다고?


“2017년 3월에 오픈을 했다. 가게를 해본 적이 없으니 엉망일 수밖에. 오직 워칭 뮤직 라운지라는 형태 하나만 신선한 정도였다. 매일매일 매장에 나와 음악을 틀었는데 영업 후 닥치는 대로 부족한 것들을 업그레이드 했다. 그러다보니 조금씩 매출이 올라갔다.”


- 결정적으로 매출이 터진 사건은?


“2017년 가을부터 매출이 급격히 올랐다. 그 시점에는 매장도 준수한 상태였고 음악도 색깔이 잡힌 단계였다. 당시 주제를 정해 파티를 했는데, 시작이 ‘마이클 잭슨’이었다. 보는 음악을 알린 상징적인 아티스트니까. 그런데 이게 입소문이 엄청나게 났다.”


- 매출은 어디까지 올라갔나?


“사실 1호점 최대 매출은 6천만원 정도라 생각했다. 그런데 2017년 12월에 7천만원, 2018년 3월 매출 1억을 달성했다. VIP 공간을 만들면서 매출이 1억 3천만원 까지 올랐고. 점점 무섭게 상승하다 2018년 12월에 3억을 넘겼다. 당시에는 어디까지 매출이 올라갈지 예측이 안됐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를 구현한 ‘제이앤 제이슨’.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를 구현한 ‘제이앤 제이슨’.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국내 최초 워칭 뮤직 라운지를 구현한 ‘제이앤 제이슨’.



월 매출 7억, 신화를 만들다


- 그러다 2호점을 준비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1호점과 비슷한 크기로 매장을 열까 했었다. 사실 2호점을 낼 때까지 나도 제이도 월급을 전혀 받지 않았다. 더 좋은 디제이를 불러오고 파티를 하는데 투자했다.”


- 왜 2호점은 크게 해보기로 했나?


“이왕 할 거 더 제대로, 크게 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2호점을 100여평 규모로 계약했다. 다행히 2호점도 시작부터 잘 됐다. 2018년 12월 오픈했다.”


- 전체 월 매출은 어느 정도인가?


“월 평균 1호점과 2호점, 가맹 형태로 계약된 부산점까지 합 7억 정도 나온다. 순익은 20프로 남는 수준. 사실 더 남길 수 있는데 파티, 이벤트, 경품 등 쓰는 비용이 워낙 많다.”


- ‘르챔버’ 등 브랜드 콜라보도 다양하게 하고 있다.


“바 ‘르챔버’와의 콜라보로 강남에 ‘하이퍼’라는 가게를 열었다. 서비스의 완성도를 제대로 올려보고 싶었다. 아무리 내가 노력해도 ‘르챔버’ 급 서비스는 할 수 없을 테니. ‘겟올라잇’과도 이런 저런 주제로 이야기중이다.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고자 한다.”


- '제이’와 의견 충돌은 없는지?


“당연히 성향이 다르니 싸우는 일도 많고 충돌도 종종 있다. 하지만 서로 도움이 되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혼자 했으면 당연히 잘 못했을 테고. 같이 했으니 여기까지 온 거라 생각한다.”


- 2020년, 올해의 목표는?


“회사에서 올해 오픈 준비 중인 게임이 많다. 여기에 가장 집중할 예정이다. ‘제이엔 제이슨’차원에서는 압구정 오렌지 페스티벌과 청담 미식회라는 큰 행사를 준비 중이고. 나중에는 음악 페스티벌을 직접 해보는 게 꿈이다. ‘LA 코첼라 페스티벌’ 같은 걸 국내에서 해보고 싶다.”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2년간 독학으로 배운 디제이. 언젠가 대형 뮤직 페스티벌 기획을 꿈꾼다.



미래의 일과 비전에 대하여


- ‘위메프’와 함께한 시간, 가장 크게 느낀 지점은?


“제대로 사업을 해본 첫 경험이었다. 사실 그 전까지는 게임 만드는 직장인이었고. 정말 힘들었지만 이게 진정한 사업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 실력, 운, 경험, 재미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내가 진짜 좋아하는 건 뭘까에 대한 답을 찾았다.”


- 사업은 운일까? 경험일까?


“사업은 운이 더 중요한 것 같다. 노력과 경험도 물론 필요하지만 잘 되는 일에는 결국 운이 따라야 한다. 나도 분명 꽤 큰 시련이 있었고 또 어떤 지점에서는 성공할 수 있었다.”


- ‘서광운’에게 가장 큰 시련은 무엇이었나?


“‘위메프’에서 쇼핑을 담당했던 3년, 그리고 최근 결과가 안 좋았던 ‘최강의 군단’.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어떤 소중함을 깨달았는지?


“내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 나를 돌아보니 꽤 이기적인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간 옳은 거라 생각했던 것들도 나를 위한 것이었고. 이를 인정한 후 스스로 많이 편해졌다.”


-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많았는데 지금은 전부 사라졌다. 남의 시선도 신경 안 쓰게 되었고. 뭔가 나를 제대로 찾아간 거 같다.”


- 앞으로 뭐하며 살고 싶나?


“사실 나는 관찰력이 꽤 좋은 편이다. 내 또래 사람들이 어떤 감성을 가지고 있는지도 잘 알고. 어떻게 즐기면 좋을지 연구하며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게임도 공간도 그 감성이 잘 통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분야 불문 쭉 이 길로 가게 되지 않을까.”



“‘위메프’부터 ‘제이앤 제이슨’까지” 서광운
스테디 셀러가 아니더라도 감성을 자극할 무언가를 끊임없이 만들고 싶다.

원부연. 서울경제신문 라이프점프 객원기자. 전 광고 기획자에서 음주문화공간 기획자로 창직 후 술집, 극장, 살롱 등 서로 다른 9개의 공간을 런칭했다. <합니다, 독립술집>, <회사 다닐 때보다 괜찮습니다.>, <퇴사 말고, 사이드잡> 세 권의 책을 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원부연 객원기자
원부연 객원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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