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에 대한 욕심은 내려놓았습니다. 현직에서 받던 것에 3분의 2정도면 됩니다. 원하는 업무분야요? 제가 그룹 내에서 한 일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저는 주어진 일은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제는 정년까지 할 수 있는 회사를 찾고 싶습니다.”
퇴직 후 재취업, 조심스럽지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한 회사에서의 재직 기간이 길고 직급이 높을수록 퇴직 후에 겪는 심리적 충격이 크다. 퇴직 당사자의 변화 인지도가 상대적으로 낮아 갑작스러운 퇴직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고, 커리어를 점검할 기회가 없어 자신의 경쟁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음 커리어 모색을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필자의 현장 경험과 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퇴직 후 재취업률은 10% 정도이다. 포지션이 높을수록 낮은 성공률을 보인다. 모두가 힘겹게 견디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급격한 고용 구조의 변화 역시 50대 이상 장년들의 재취업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이처럼 재취업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지만 지나치게 부정적일 필요도 없다. 필자는 퇴직 후 6개월 이내에 재취업에 성공한 임원이나, 2년 후 CEO 포지션 인터뷰를 진행하는 후보자들도 만났다. 공통적인 것은 자신의 핵심역량을 정확하게 알고 꾸준히 변화에 대응했다는 점이다. 퇴직 후 재취업을 목표로 한다면 다음 4가지 실행 전략을 제안한다.
첫째, 이름과 회사를 지우고 이력서를 보라.
퇴직 후 상심한 마음을 추스르지도 못한 채 이력서부터 준비하는 퇴직자들이 많다. 지위 회복에 대한 열망, 불안감 해소, 경제생활 유지 등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이력서만으로 재취업의 문은 열리지 않는다. 특히, 임원 이상 직급은 서치펌을 통한 구직보다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로 재취업에 성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재취업지원 프로그램도 퇴직자들의 이력서 작성과 취업 알선이 주요 범위이고 2020년 5월부터 ‘재취업지원 서비스’가 제도화됐으나, 취직할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필자는 재취업 성공률을 높이는 첫 단계로 ‘자신과 회사의 이름을 지우고 이력서를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이 사람, 과연 경쟁력이 있는가’를 자문해 보는 것이다. 그동안 나를 지탱해왔던 회사가 사라진 순간, 남겨진 것이 나의 경쟁력이다. 자신을 객관화하고 시장 경쟁력을 면밀하게 검토하는 과정에서 재취업의 가능성이 시작된다.
둘째, 스타일을 바꿔라.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새로운 결심을 하는 것은 가장 무의미한 행위다.” <오마에 겐이치>
오마에 겐이치가 말하는 것처럼 변화는 실천에서 시작된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일상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외적인 스타일 변화도 중요하지만, 만나는 사람, 취미, 취향 등 다양한 활동들도 스타일 변화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많은 퇴직자가 자신에게 닥친 퇴직을 ‘커리어의 실패’로 생각해서 깊은 우울감에 빠지고 행동반경을 좁혀 혼자 구직활동을 진행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재취업의 가능성은 이력서 작성이나 시장조사만으로는 찾기가 어렵다. 활동 범위를 넓히고 스타일을 변화시켜 새로운 기회를 찾아야 한다.
셋째, 냉정한 조언을 해 줄 현실적인 전문가를 찾아라.
헤드헌터들이 알려주지 않는 진실이 있다.
“재취업률이 10% 보다 적을 수도 있습니다. 임원급일수록 낮아요. 경영진이라는 자리가 쉽게 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크게 상심했을 분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쓰면서 기다려 보자고 말씀드려요. 희망 고문을 드리는 경우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국내 메이저 서치펌 대표>
퇴직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본인의 경쟁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다. 그러나 자신의 성과와 강점을 스스로 파악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커리어 전문가를 만나거나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다만, 현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 줄 대상을 만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간이 헛되이 간다. 이때, 퇴직 후 자신의 심리와 정서를 잘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퇴직 후 최소한 6개월까지는 정서적으로 매우 힘든 상태를 경험하는 퇴직자들이 많은데, 타인과의 대화 중에 퇴직 당시의 충격으로 돌아가 더 깊은 우울감을 경험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럴 때는 커리어를 먼저 챙기기보다 새로운 일상의 루틴을 만들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넷째, 뉴업 New-UP(業) 타이밍을 구상하라.
조급함은 숨기기 어렵다. 갑작스러운 퇴직으로 인한 직위 박탈감은 사람을 초조하게 해 자칫 성급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퇴직 후 구직 과정은 장기전이라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2년 이상 소요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기간 동안 새로운 일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면서 구직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초조함을 더는 방법이다. 대안이 있는 사람은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면, 재취업 후에는 얼마나 오래 회사에 다닐 수 있을까. 재취업 후의 평균 근속연수가 1.8년이라는 경험적 통계가 있다. 이는 첫 퇴직 후 3년 이내에 또 다른 퇴직을 경험할 수도 있다는 의미인데, 두 번째 퇴직은 더욱 심각한 심리적 박탈감과 자기 유능감에 상처를 입힌다. 그러므로 누구에게나 퇴직이 당연한 일이듯, 퇴직 후 새로운 역할을 찾는 과정 역시 당연한 일로 인식되어야 한다. 남들보다 조금 일찍 퇴직한 이 현실이 막막하고 힘들겠지만, 그만큼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어떤 옵션도 없는 시점이 미래를 위한 가장 좋은 때일 수 있다. 퇴직 후 뉴업 New-UP(業)의 발견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직장인들에게 영원한 현직이란 없다.
- 성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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