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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오적’ 저항 시인 김지하 별세···향년 81세

김지하 시인이 2014년 10월 서울 종로구 견운동 옥션단에서 열린 수묵산수전 ‘빈 산’ 기자 간담회에서 웃고 있다./연합뉴스


‘오적(五賊)’ ‘타는 목마름으로’ 등을 남긴 김지하 시인이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시인은 최근 1년여 동안 투병한 끝에 이날 오후 강원도 원주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토지문화재단 관계자가 전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작가) 씨와 차남 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 겸 토지문학관 관장) 씨가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유족들은 고인의 상태가 악화해 119를 불렀지만 결국 세희 씨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별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인은 1970~1980년대 군사독재 시대에 한국 현대사의 질곡에 정면으로 맞선 민주화 투사이자 저항 시인이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69년 시 ‘황톳길’로 등단한 후 유신 독재에 저항하는 민족 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꼽혔다.

시인은 1970년 발표한 풍자시 ‘오적’으로 구속되는 필화를 겪었다. ‘오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다섯 종류의 적으로 간주하고 풍자한 작품이다. 1974년에는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1980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됐다. 이밖에 대표작으로 저항시 ‘타는 목마름으로’ 등과 산문집 ‘생명’ ‘율려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1973년 소설가 박경리 씨의 딸 김영주 씨와 결혼했다. 그간 만해문학상, 아시아 아프리카 작가회의 로터스 특별상, 정지용문학상, 만해대상, 국제시인회의 위대한 시인상 등을 수상했으며 노벨문학상·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1980년대 이후 후천개벽의 생명 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고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상상력으로 많은 시를 쏟아냈다. 이는 민주화 운동 세력과의 거리 두기로 이어졌다. 특히 그는 1991년 당시 명지대 학생이었던 강경대 군이 전경의 구타로 숨진 후 학생·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이 이어지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라는 칼럼을 게재한 후 민주화 진영으로부터 ‘변절자’라는 비판을 받았다.

2012년에는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진보적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면서 자신의 고향과도 같았던 민족 문학 진영과 완전히 결별했다. 2018년에는 등단 50주년을 기념하는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최형욱 기자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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