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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일푼에서 年매출 2000억 회사 일궈···트로트 가수로 인생 2악장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

"무명가수 위한 공연장·가요제 만들 것"

막노동 전전하던 무일푼 '흙수저' 출신

영양실조까지 걸려가며 창업자금 마련

글로벌 기업 목표…가족 승계는 않겠다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서울 양천구 목동 사옥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오승현 기자


“앞만 보고 달려 온 인생사 산전수전 겪으며 여기 왔네. 잘했다 정말 수고 많았다. 두 번째 인생 드라마 속 내 인생 바로 내가 주인공인 거야.”

김명환(73·사진) 덕신하우징 회장은 신인 트로트 가수다. 자신의 노래 ‘두 번째 인생’의 가사다. 김 회장은 2020년 칠십의 나이로 늦깎이 정식 가수로 데뷔해 이제 음악과 함께 두 번째 인생을 살고 있다.

“음악은 나의 행복입니다.” 음악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중견기업 회장이 무대 위에 올라 트로트 곡조를 선보이는 장면은 다소 어색해 보일 수 있지만 그에게 노래는 진심이다. 김 회장은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며 “학교·군대·잔치 등 기회만 있으면 마이크를 잡으려고 했다”고 전했다.

김 회장의 가수 데뷔는 우연한 계기로 이뤄졌다. 창사 40주년을 맞은 2020년 덕신하우징 천안 공장에서 기념 음반과 함께 공연을 선보이려 했지만 ‘코로나19’로 수차례 연기됐다. 언제 데뷔할 지 고민하던 끝에 주변의 권유가 이어지자 그답게 “그냥 데뷔해버리자”고 결정했다. 이제는 엄연히 가수협회에 등록한 공식 가수이며 여러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험도 있다. 김 회장은 “가창력이 뛰어나지도 않고 나이도 적지 않지만 후회 없이 살았다는 마음에서 도전한 것”이라고 전했다.

혼자만 음악을 즐길 생각은 아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최종 목표가 사회 공헌이라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가수 생활도 나눔을 펼치는 한 방법이다. 현재는 그의 녹음실과 연습실을 가수 지망생들이 쓸 수 있도록 공간을 개방하고 있다. 가수 활동으로 번 수익금도 전액 기부한다. 김 회장이 2019년 세운 ‘무봉장학재단’을 통해서다.

다음 계획은 무명 가수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올 가을 자신의 고향 충남 홍성에서 가요제를 열 계획이다. 신인 가수를 발굴하고 무명 가수들이 한 번이라도 더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나아가 무명 가수 전용 공연장을 설립할 계획도 그리고 있다. 김 회장은 “가수 생활을 해보니 무명 가수들이 겪는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며 “무명 가수들에게 기회를 주자는 생각에서 공연장도 짓고 가요제를 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이 서울 양천구 목동 사옥에 마련된 스튜디오에서 드럼을 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김 회장은 ‘흙수저 신화’의 주인공이다. 1951년 충남 홍성군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그다지 유복하지 못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일손이 부족했던 탓에 부모님은 그를 농부로 키우길 원했다. 중학교 진학도 일찌감치 포기해야 했다. 성인이 됐다고 크게 달라질 건 없었다. 군 입대 후 월급이 더 나온다는 말에 베트남 전쟁 파병까지 자원했던 그였다. 사회 생활 첫 시작도 막노동판이었다. 벽돌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러던 그는 우연한 기회에 철강재 유통 회사의 영업사원이 됐고 거기서부터 성공 스토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더 큰 꿈을 위해 직접 회사를 차렸고 각고의 노력 끝에 연매출 2000억 원의 데크플레이트(거푸집을 대체하는 건축용 자재) 1위 기업으로 키워냈다. 가진 것 하나 없던 청년이 중견기업 회장으로 올라선 인생 역전 스토리다. 온몸을 바쳐 키운 회사는 이제 40년을 넘었고 창업주는 다음 단계를 생각하고 있다. 덕신하우징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한다는 과제와 창업주가 없어도 회사가 온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토대를 마련하는 게 그것이다.

[CEO&STORY]김명환 덕신하우징 회장. 오승현 기자 2023.04.12


김 회장은 이제 덕신하우징을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시키려 한다. 덕신하우징은 업계에서는 드물게 국내 시장에 만족하지 않고 일찍부터 해외 쪽으로 눈을 돌렸다. 2015년 베트남 현지 법인을 세워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국에도 법인을 설립했고 올해 생산 공장을 지을 계획이다. 태국·사우디아라비아 등에도 진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김 회장은 “올해 회사 슬로건은 ‘국내를 넘어 세계로’이다”라며 “앞으로 10년간 해외 지사나 사무소를 10개 더 만드는 것이 구체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김 회장에게 또 하나 남겨진 숙제가 있다. 바로 승계 작업. 다만 그는 자신의 가족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다는 방침을 이미 천명했다. 인생을 바쳐 일궈낸 회사이기에 아쉽다는 생각이 들 법하다. 그런 질문을 하자 김 회장은 “왜 꼭 자식에게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오히려 되물었다. 사실 그도 한때 2세 경영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직원들과 함께 회사를 꾸리는 ‘공동체 경영’이 더 적합하다고 결론 내렸다. 지금의 자신과 덕신하우징을 만든 직원들이 함께 회사를 이어나가는 게 더 경쟁력 있다는 것이 김 회장의 판단이다. 김 회장은 “2009년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할 때 솔직히 조금 불안하기도 했는데 막상 해보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며 “회사 경영은 유능한 사람이 하는 것이 맞다”고 힘줘 말했다.

이완기 기자
kinge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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