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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사무원으로 '인생 2막’ 연 40대···“조바심 덜고 성실히 도전하니 기회 찾아와”

■ 행사 기획자에서 법률사무원으로 전환한 김정임 씨

코로나19로 퇴사 후 서초50+센터 양성과정 수료

초년생처럼 열정, 성실로 무장…전문성 위해 방송대 편입도

“시야 넓어져, 중장년에게 적합…자신감 갖고 도전하길”


법정에서 날 선 변론을 펼치는 변호사 뒤에는 숨은 조력자가 있다. 변호사가 법률 상담을 하고 피고인을 대리해 변호하는 동안 법원에 낼 서류를 작성하고, 변호사가 수임한 모든 사건의 진행 상황과 변론(재판) 기일을 관리하는 등 업무 전반을 지원하는 사람. 바로 법률사무원이다.

서울 서초구는 법률 서비스의 메카로 불린다. 대법원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있을 뿐만 아니라 각종 법무법인 등도 모여있다. 법무부의 변호사 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월 기준 서울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2만 2087명 중 약 36.2%가 서초구에 개업했다. 서울의 변호사 3명 중 1명은 서초구에서 활동하는 셈. 이러한 지역적 특성은 질좋은 중장년 일자리 발굴 문제로 고민하던 서초50플러스센터에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줬다. 이 지역 주민들은 기존 노인 대상 일자리나 단순 노무 일자리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법률사무원이라면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것으로 생각됐다.

센터는 서초구청과 협력해 지난해 ‘법률사무원 양성과정’을 열었다. 기초 법률 지식이나 관련 실무를 배우는 과정인데, 이를 수료한 뒤에는 법무법인에서 인턴십을 통해 실무 경험을 쌓고, 정규직 전환 기회도 얻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현재까지 50명이 이 교육을 받았고, 이 가운데 15명이 인턴 또는 정규직으로 채용됐다. 라이프점프는 법률사무원으로 ‘인생 2막’을 연 법률사무소 도원의 김정임(44) 주임을 만났다.

라이프점프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정임 주임. 정예지 기자


김 씨는 15년간 콘퍼런스와 학회 등을 기획하는 행사 담당자로 근무했다. 코로나19와 경기 침체로 회사가 문을 닫기로 결정하면서, 김 씨도 2023년 12월 회사를 떠났다.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던 짐을 내려놓고, 자녀와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 2막을 보내려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게 된 것. 김 씨는 남편을 위해 노동법을 공부해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3월, 지하철에서 법률사무원 양성과정 모집 공고를 우연히 접했다. 그는 ‘법을 공부하면 남편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지원을 결심했고, 합격했다.

“법과는 먼 사람이라 처음에는 모든 것이 생소했어요. 처음에는 원고와 피고라는 기본적인 용어조차 헷갈릴 정도였죠.”

두 달간 교육을 마친 김 씨는 15년 만에 다시 이력서를 쓰고 면접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됐다. 노력 끝에 그는 지난해 3월 서초구에 위치한 법무법인 도원에 합격했다. 김 씨는 인턴으로 사건 흐름 파악과 우편 발송, 주민센터에서 초본 떼기, 변론 기일 체크 등의 업무를 맡았다. 얼핏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김 씨는 6개월간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하루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고 했다.

법무법인 도원의 이선욱(왼쪽부터) 사무국장과 김정임 주임. 정예지 기자


“마흔이 넘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어요. 나이가 많으니 회사의 기대치는 높은데 법원에서 전화가 와도 내용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당황했던 적도 있었지요. 잘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심리적으로 위축은 되는데 밖으로 티를 내고 싶지는 않았어요.”

김 씨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기 위해 열정과 성실성을 무기로 삼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물었고, ‘잘하고 싶으니 도와 달라’는 의지를 꾸준히 어필했다. 항상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며 성실함을 증명했다.

“‘나는 40대가 아닌 20대 사회 초년생이다’라고 계속 되뇌었어요.”……

그 덕분일까. 인턴 기간이 끝날 무렵, 사무장으로부터 인턴십 3개월 연장 제안을 받았다. 다만 조건이 붙었다. 법률 지식이 부족하니 한 달 동안 공부를 더 하고 다시 오라는 것.

김 씨는 바로 법률사무원 전문 교육기관에 등록해 추가로 공부를 한 뒤 회사로 돌아왔다. 업무에도 점차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김 씨는 점점 더 많은 역할을 맡게 됐다. 사건 진행 흐름을 파악하고, 변호사의 재판 일정 관리를 할 뿐만 아니라 내용 증명 발송, 사건 위임 약정서나 위임장 작성 등 점차 복잡한 업무도 맡았다. 고객 상담 보조 역할도 하면서 업무 만족도도 높아졌다. 일이 늘어나면서 이전 직장에서의 경력과 경험을 업무에 접목할 수 있는 순간도 많았다고 한다. 의뢰인과 변호사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법률사무원은 대인관계 능력과 문서 작성 능력이 중요하다. 사회 경험이 풍부한 김 씨의 경우 침착하게 의뢰인을 응대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행사 기획일은 다양한 사람을 만나야 했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편하게 다가가는 노하우와 방식을 깨달았어요. 연륜은 무시할 수 없다고 그 경험이 현재 의뢰인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또 변호사님에게 재판 일정이 중요한 것처럼 콘퍼런스도 일정 관리가 핵심이거든요. 예전 직장에서의 경험이 의외로 많은 부분에 연결되더라고요.”

김 씨는 법률사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게 된 이후 삶의 시야가 넓어졌다며 중장년에게 적합한 직종이라고 추천한다.

“‘법은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어요. 법률 지식을 알게 되면서 간단한 소송은 직접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의뢰인분들이 대부분이 5060이에요. 어려움을 겪는 제 주변인들에게 간단한 도움을 줄 수도 있겠죠. 제 삶이 더 확장되는 느낌이 들어요.”

라이프점프와 인터뷰하고 있는 김정임 주임. 정예지 기자


김 씨는 지난달 정규직으로 전환된 것에 이어 한국방송통신대 법학과 3학년으로 편입해 학업도 병행하고 있다. 조금 더 법률 지식을 갖춘 법률사무원으로 성장하고 싶은 마음에서다.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정규직 전환 계약서도 항상 책상 위 잘 보이는 곳에 둔다고. 언젠가는 법률사무원을 넘어 사무장으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경력이 쌓일수록 문제 해결 능력도 더 좋아지겠죠? 의뢰인들의 간절한 마음을 알기에 제가 더 도울 수 있다면 정말 보람찰 것 같아요. 쉽지 않겠지만 더 잘하고 싶고, 계속 배우고 싶어요. 이렇게 한번 도전해 보니 더 이상 새로운 일이 두렵지 않아요.”

15년 동안 행사 기획을 해오던 김 씨는 법률사무원이라는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낯선 분야에서 인턴을 거쳐 정규직까지 올라선 그는 새로운 도전을 망설이는 중장년층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이 때문에 빨리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더군요. 천천히 단계를 밟아 나가다 보면 결국 나만의 강점이 드러나는 순간이 와요. 연륜과 경험이 분명 발휘될 기회가 옵니다. 자신감을 갖고 도전해 보되 6개월은 견뎌보세요.”
정예지 기자
yeji@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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