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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모의고사 1등 수재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가 된 이유는

■ 법의학 권위자 유성호 서울대 교수 인터뷰

학창 시절 전국 모의고사 1등 수재...서울대 의대 입학

본과 4학년 국가고시 앞두고, 법의학에 빠져...의사 대신 법의학자의 길로

/권욱기자


새치가 희끗희끗 보이는 가르마에 둥근 뿔테 안경, 그 너머로 보이는 부드럽고 인자한 미소. 국내 법의학 권위자인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실 교수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의 이름 석 자를 잘 모르는 대중들도 국내의 한 지상파 방송의 인기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등장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사인(死因)’을 분석하는 모습을 보면 ‘아, 그 사람!’ 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망자의 한(限)을 달래어 억울한 죽음을 없애는 게 소명’이라고 밝히는 유 교수.직업 상 매주 시체를 보러 가야 하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죽어야 만날 수 있는 남자’라고 부른다. 수많은 시신을 부검해야 하는 법의학자의 숙명을 빗댄 반어적 표현이지만 그를 만나보면 ‘저승사자’의 무서운 이미지보다 죽음을 고찰하는 ‘철학자’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고교 시절 전국 모의고사 1등을 차지했던 수재로,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그는 스스로를 ‘문과’에 더 울리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국가고시를 앞두고 있던 본과 4학년 시절 법의학 수업에서 ‘10년째 제자가 없어서 걱정’이라는 법의학 전공 교수의 말에 가슴이 뜨거워진 것도, 그래서 법의학자의 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것도 그의 남다른 인문학적 소양 때문이다. 산 사람이 아닌 죽은 사람에게 의술을 펼치고 있는 그를 라이프점프가 만났다.

- 법의학자는 어떤 직업인가.

"쉽게 말하면 법률에 관계된 의학적인 일을 하는 직업이다."

- 구체적인 예를 들어 달라.

"매주 시신을 부검해 경찰·검찰의 수사자료에 기본적인 판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 직접 사건 해결에도 나서나.

"최근 영화나 드라마에선 법의학자들이 직접 사건 해결에 나서지만 원래 수사는 경찰과 검찰이 하는 거다. 법의학자는 어디까지나 그들을 도와주는 조력자다. 검경이 수사한 자료에 의학적·과학적인 숟가락을 얹어주는 사람이라고 보면 된다."

- 원래 법의학자를 꿈꿨나.

“아니다. 사실 법의학이 뭔지 잘 모르고 이 분야에 들어왔다(웃음). 의사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정신과의사나 외과의사를 생각했다. 부모님이 형편이 넉넉지 못한 시골 출신인데다 공부하러 읍에 나가면 다들 부잣집 자제는 의사 집안이었다. 또 어릴 적 파스퇴르 전기를 읽었는데 백신을 개발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 그런데 왜 법의학의 길로 들어섰나.

“어렸을 때부터 인권과 정의에 대한 고민이 많았는데 잊고 지냈다. 본과(서울대 의대) 4학년 시절 이윤성 교수님(現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로부터 법의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뒤 마음속에 있던 불씨가 되살아났다. ”

- 어떤 점이 끌렸던 것인가.

“ 본과 4학년 국가고시 마지막을 앞두던 때였다. 이 교수님의 법의학 과목을 들었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당시 교수님께서 강의 중에 ‘법의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제자가 10년째 없어 걱정’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를 부르는 소리가 아닌가’ 했다. 그런데 교수님과 딱 눈이 마주친 거다. 물론 저만의 착각일 수도 있다. 당시 수업을 들은 학생 수만 190명이었으니깐. 교수님이 ‘앞으로 법의학은 전망이 밝다. 치고 올라갈 일밖에 없다’고 말씀하신 대목에서 법의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알고 보니 교수님이 몇 십 년 만에 다시 받은 제자가 나였다. 이 교수님과는 지금도 꾸준히 연락하며 많은 걸 배우고 있다.”

- 윤 일병 사망 사건이 기억난다. 교수님의 판단이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14년 8월 여름 오후로 기억한다. 연구실로 한 기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다. 군부대에서 선임들의 폭행으로 냉동식품을 먹다 질식사한 윤모 일병의 사건을 다시 살펴봐 달라는 부탁이었다. 이메일로 수많은 사진 자료를 받아 본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최초 사인은 ‘질식사’였는데 갈비뼈가 심하게 부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교통사고 피해자에게나 볼 수 있는 법한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면서 질식사가 아니라 반복적 폭행에 의한 쇼크사가 사망 원인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심한 구타가 특정 부분에 가해지면 소위 맞아 죽었다고 하는데, 부교감신경이 자극되면서 심장이 멈췄을 것으로 봤다.”

- 당시 교수님의 이 같은 발언이 밤 뉴스를 통해 전해졌고, 시민들이 큰 충격에 빠진 것으로 안다. 상해치사로 가해자들을 기소하고 “공소장 변경은 없다”고 버티던 군도 입장을 바꾼 것으로 아는데.

“그렇다. 내 발언이 보도 된 후 군검찰이 연구실로 찾아왔다. 난 조목조목 내 견해를 설명했다” (편집자 주: 이후 결국 군은 입장을 바꿨고, 가해자들에게 살인죄가 적용돼 주범은 징역 40년을 선고받았다. 단순 상해치사로 묻힐 뻔한 부대 내 폭행 사건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법의학자는 변사는 물론 의료사고나 재해사고 등 사인을 명확히 밝혀 내는 과정에서 죽음을 마주하게 된다.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는 장면도 있을 것 같은데.

“2015년 1월 의정부의 한 아파트에서 화재가 난 적이 있다. 필로티 기둥 구조라 불은 큰 화재로 이어졌다. 현장에서 발견된 피해자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고아로 보육원에서 자라오다 입양과 파양을 두 번이나 겪었던 미혼모와 다섯살배기 아기가 있었다.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던 엄마 덕분에 아기는 화상을 하나도 입지 않았다. 대신 심한 화상을 입은 엄마는 병원에서 치료하다 세상을 뜨셨다. 그런데 엄마의 눈가에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보였다. 아마도 눈 감기 전 어릴 적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던 게 아닌가 싶다. 너무 안타까운 마음에 저도 울고 경찰관들도 같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 직업상 많은 죽음을 대하면서 남다른 철학이 생길 것 같다. 우리 사회에서도 이제 죽음을 진지하게 숙고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이유는.

“죽음은 언제 어떻게 올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차라리 외면하고 사는 게 마음 편할 수 있다. 그러나 존경받는 삶을 살아온 분들도 죽음을 회피하다 막상 죽음이 다가오면 두려움에 떨거나 남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한다."

-인생을 잘 마무리하기 위해 죽음을 준비하는‘종활(終活)’이 필요하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그래야 비로소 나답게 살고 나답게 죽을 수 있다."

- 철학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영원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오히려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톨스토이가 주변 삶과의 사랑을 통한 영원한 삶을 말했듯이 ‘나’라는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에 있다고 본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안중근 의사 같은 위인들은 한국인이 살아 기억하는 한 영원히 존재한다.”

- 다시 법의학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갈수록 법의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척박하지 않나.

“그렇다. 현재 대한법의학회에 등록된 부검 가능한 법의학자 수는 전국적으로 59명밖에 되지 않는다. 나도 법의학을 선택한 지 20년 만에 처음 제자가 생겼다. 전공의(레지던트) 과정을 밟고 있는 1명이 전부다. 5~6년 전 제 수업을 듣던 사회과학대 수석 출신 심리학과 학생이 의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법의학을 하겠다고 해서 많이 격려했지만 결국 다른 분야를 선택했다”

- 서운하지 않나.

“법의학 전공을 택하지 않는 학생들을 원망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의대생들이 법의학 분야를 선택하기 어려운 것은 다른 동기들과 달리 졸업 후 사실상 새로운 분야에 다시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의학자는 임상의사보다 월급은 적은 반면 고생은 더 많이 한다.”



- 어려운 선택이라는 것인가.

“맞다. 대학교수 아니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들어가는 방법이 있지만 5급 공무원이라고 해도 다른 의사 동료들보다 월급이 적죠. 대개 의사는 모범생이 많은데 법의학은 아무래도 통통 튀는 사람들이 하게 된다. 부모님들도 자식이 돈 잘 버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 대신 법의학자를 된다고 하면 안 좋아할거다.(웃음) 어려운 선택일 수밖에 없다. ”

- 법의학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한 조건은 뭔가.

“지금보다 더 많은 법의학자가 양성돼야 한다. 내가 예능 프로그램도 가리지 않고 각종 매스컴을 통해 법의학을 ‘전파’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꿈이 있다면.

“지식의 바다에서 조개를 하나씩 쌓아올리는 학자의 역할에 충실하면서 법의학 연구에도 매진하고 제자들도 잘 가르치고 싶다. 법의학 교과서는 너무 딱딱해서 새로운 형식의 재밌는 교과서도 쓰고 싶다. 법의학자는 ‘사회에 봉사’하는 직업이다. 좋은 법의학자들이 더 많이 늘어나 이 세상의 억울한 죽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방진혁기자 bready@
서민우 기자
ingagh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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