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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되찾은 나의 일 “그때나 지금이나 인생이라는 무대는 달라지지 않았어”

이선아 플코스킨 매니저…예술경영 업무경력 무기 삼아 바이오 테크기업 운영관리 매니저로 변신

내일의 내:일 14. 최고의 무대를 만드는 내 일


통계청에 따르면 임신과 출산, 육아 및 가족 돌봄 등을 이유로 경력단절을 겪는 여성의 수는 2019년 기준 169만명에 달한다. 놀랍게도 이 중 구직 의사가 전혀 없는 경우는 0.6%에 그친다. 99%가 넘는 대다수의 여성들은 다시 일을 통해 사회와 연결되기를 바라고 있다.

모 회사의 광고 카피처럼, ‘엄마라는 경력이 스펙 한 줄 되지 않는’ 현실 속에 이들의 다양한 전문성과 잠재력은 사회와 무관하거나 동떨어져있다고 치부되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단녀’라는 세 글자에 갇힌 편견을 깨고 작지만 커다란 성장을 일궈내는 이들이 있다.

라이프점프와 루트임팩트가 공동 기획하는 ‘내일의 내:일’은 일터 밖에서 보낸 시간을 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라는 이름으로 재정의하고, 스스로 일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다시 누군가의 동료로 돌아온 여성들의 성장 이야기이다. 그들의 생각과 경험을 나누는 것으로 간절히 내 일을 꿈꾸는 이들에게 따뜻한 응원을 건네고자 한다.

예술경영 업무로 경력을 쌓았던 이선아 매니저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통해 의료용 소재와 기기, 화장품 소재원료를 개발하는 바이오 테크놀로지 스타트업 플코스킨에서 내 일을 찾았다. 연구진이 기술을 통한 사회혁신에 몰두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그가 한 편의 공연을 위해 다양한 팀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협력한 일과 매우 닮아 있다. 플코스킨 기업부설연구소(명칭 (주)플코스킨 항노화&재생의학 연구센터, 이하 연구소)팀의 행정을 담당하고 있는 이선아 매니저를 성수동 헤이그라운드에서 만나 그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이선아 플코스킨 연구소 운영관리 매니저


-바이오 테크놀로지 기업, 이 말만 듣고는 복잡한 수학 공식이나 실험실 같은 장면만 떠오르네요. 플코스킨이 하는 일을 조금 더 쉽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플코스킨은 일단 연세대학교 교원창업으로 2017년에 설립된 회사에요. 대표님은 연세대학교 성형외과 교수님이신데, 직접 수술을 집도하며 느꼈던 불편함을 기반으로 환자들의 여러 어려움(경제적인 부분 포함)을 해결하려는 연구, 개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다루고 있는 분야로는 크게 3D프린팅을 이용한 의료기기의 개발과 제조, 그와 관련된 각종 의학 및 약학 관련 연구개발, 마지막으로 저희 자체 화장품 브랜드인 유리프(Youlief)의 원료 소재의 개발, 제조, 판매가 있습니다.”

-훨씬 이해가 잘 되었어요. 그럼 선아님은 예전에도 이공계 분야에서 일을 하셨던 건가요?

“제가 설명드린 플코스킨의 비즈니스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분야에서 커리어를 쌓았어요. 대학생 시절에 공부는 제쳐두고, 연극 동아리에 푹 빠져 있었는데 그 활동이 자연스럽게 업으로도 이어졌던 케이스에요. 대학로에서 1년쯤 일하다가, 극장으로 직장을 옮겼어요. 그 곳에서 공연과 축제를 기획하고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일을 했었고요.

조금 더 전문적인 표현으로는 예술경영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당시에 제가 했던 일이 기획, 마케팅, 인사와 같이 직무별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어요. 예술가들은 물론 기획팀, 무대팀이 다같이 의견을 내고 조율하는 방식으로 일을 하다 보니 밤샘이 잦을 수밖에 없었고, 하루하루를 그저 격파하는 기분으로 보내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순간 재미도 잃고, 건강도 잃게 된 거죠. 잠시 멈출 때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쭉 7년을 쉬게 되었네요.“

-7년 간의 휴식이라. 긴 시간이네요.

“아니, 정확히 말하면 쉰 것은 아니에요.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돌보며 마을 공동체에 속해 지내왔어요. 사람 그 본연의 선함을 믿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의 감정과 욕구에 관심이 많아서 비폭력대화를 배우고 연습 모임을 운영하기도 했고요. 실은 얼마 전에 첫째 아이가 ‘누구 엄마는 일 안 한대.’ 라는 말을 하길래 엄청 혼을 냈거든요.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든 집에서 시간을 보내든, 일을 안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이들은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들 나이에 맞게 뛰어노는 게 일일 거고요. 금전적 보상이 있는 활동만을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절대 동의하지 못하면서, 저 역시 은연중에 비슷한 표현을 해버렸네요. 특히, 육아라는 것은 이성적인 사고로 해결할 수 없는, 제 자신과 남편의 밑바닥을 마주하게 되는 난이도 최상의 도전적인 업무인데 말이죠. (웃음)”

-선아님 말씀이 맞아요. 다른 분들도 선아님께서 8살과 6살 난 남자아이 둘을 키우고 있다고 했을 때, 그저 감동적이라고 하셨잖아요! (웃음) 의료기술 연구 개발과 공연 기획은 거의 정반대의 분야 같은데요. 어떻게 플코스킨의 행정지원을 담당하게 되셨어요?

“이전에 잠깐 대학교 실험실의 연구과제 관련 행정을 도왔던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잘 연결된 것 같아요. 제가 이전에 일했던 극장이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 중 하나여서, 국고를 집행하고 정산하는 등의 행정 업무에 대한 두려움이 크지 않았던 것도 있고요. 무대에 올라 연기를 하는 것이나 연구 개발을 하는 것은 분야는 달라도 굉장히 창조적인 영역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성취감도 매우 클 것이고요.

하지만 저는 그 때나 지금이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돕고 지원하는 일에 더 보람을 느끼는 것 같아요. 물론 너무 반복적이기만 한 일보다는 제가 원하는 것을 만들어갈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자유가 필요하고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업무역할이 다양할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저희 회사는 아직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역할을 온전히 잘 해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에 자율성이 보장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죠. 저도 제 몫을 다하기 위해 업무적으로 도움이 될만한 공부를 찾아보곤 했어요. 한편으로는 일에만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 제 자신을 돌보는 균형점을 찾아가는 개인적인 성장의 지점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럼 선아님은 언젠가는 다시 문화예술 분야의 일을 찾고 싶은 계획도 갖고 계신가요?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지 못했어요. 지금의 저에게는 일을 선택함에 있어서 유연근무 제도가 빼놓을 수 없는 전제조건이거든요. 저는 경력단절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도 일자리에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우리가 떠올리는 엄마의 모습은 전업주부거나 풀타임 워킹맘, 이렇게 이분법적이니까요. 제가 속해있던 공연 기획 분야 역시, 단기간에 일하는 시간 또는 장소를 선택하는 유연한 문화가 확보되긴 어려울 것 같고요.

입사하기 전 교육을 통해 ‘경력’을 설명하는 이론이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접했는데, 왠지 모를 안도감이 들었어요. 그 때 알려주신 경력 이론에 따르면, 한 분야에서 계속해서 시간을 쌓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고 언제든지 주도적으로 제 일을 만들어갈 수 있는 거잖아요. 남들이 이야기하는 성공보다는 제가 느끼는 성장감과 행복함이 더 중요한 거고요. 그러니 우선은 제 자신에게 더 집중하는 것이 목표에요. 제가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방향을 찾는 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일이든 쉼이든 그냥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제 감정에 충실하게, 온전히 제 의지로 선택하는 일들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이선아 매니저는 이미 일과 삶의 무대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빛을 내고 있었다. 앞으로도 선아님의 일상이 한 편의 멋진 공연처럼 기획은 물론 연출, 연기에 이르기까지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드는 즐거운 씬(Scene)들로 꽉 채워지길 응원한다.

루트임팩트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maker)’를 일과 삶, 배움의 분야에서 지원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터 경력보유여성이 일터로 돌아와 그들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유연한 일자리를 설계하는 ‘임팩트커리어W’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여러 체인지메이커 조직들과 함께 여성의 지속가능한 일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송예리 루트임팩트 매니저
박해욱 기자
spook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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