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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 딸 예쁜 옷 입히려 재봉틀 돌렸죠"

장애인 전문 의류 만드는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

기성복 입기 힘든 둘째 딸 위해

편히 입는 바디슈트 직접 개발

특허 취득에 표준 규격 제정까지

관련 제품·정보 제공하는 플랫폼

IT업체와 손잡고 내년 론칭 계획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가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서 장애인 전문 의류 중 주력 제품인 바디슈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입힐 옷이 없었다. 입히는 일도 고역이다. 뻣뻣한 팔다리에 옷을 입히려면 힘을 많이 쓰게 된다. 자칫 팔이 부러질 수 있다. 뇌병변 장애 1등급의 딸. 집이라면 편하게 큰 옷을 선택하겠지만 외부의 시선은 견디기 힘들었다. “나에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한없이 사랑스러운 딸인데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나 억울했습니다. ‘밖에 나갈 때만이라도 예쁘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엄마는 재봉틀을 잡았다.

박주현(49) 베터베이직 대표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전문 의류를 선보인 주인공이다. 그의 옷은 일반복과 사뭇 다르다.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 걸려 있는 상·하의 일체형 바디슈트가 대표적이다. 박 대표는 “남의 시선을 피해 딸을 숨기기보다 예쁘게 보여서 사랑받는 아이라는 느낌을 줄 수 있게 하고 싶었다”며 “그러면 사람들이 보는 시선도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제작 이유를 밝혔다.

원래 의류나 디자인에는 전혀 관심이 없던 박 대표였다. 그런 그가 의류 사업에 뛰어든 것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딸에게 제대로 된 옷을 입히기 위해서다. 장애인들은 국내에서는 눈 씻고 봐도 체형에 맞는 옷을 찾을 수 없다. 해외에 제품이 있기는 하지만 질이 낮고 사이즈도 맞지 않았다. 결국 선택한 것이 기성복 리폼. 이후 여성발전센터에서 본격적으로 의류를 배우기 시작했다. 앞트임·옆트임 등의 기법을 만들어 특허도 받았다. 지난 2017년에는 여성 창업 아이디어 경진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이를 바탕으로 1년 뒤 1인 법인을 설립했다. 얼마 전에는 우리금융그룹으로부터 ‘착한 가게’ 타이틀을 받고 광고에도 등장했다.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가 서울 당산동 사무실에서 자신이 만든 장애인 전문 의류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회사는 집 바로 앞에 있다. 딸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병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다니는 진료과도 무려 9개나 된다. 하루하루 긴장 속에 살아야 한다. “딸에게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어요. 겨울이면 더 심하죠. 일이 생기면 바로 병원으로 뛰어가야 했습니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가 없더군요.”

뇌병변 장애인은 체형과 몸을 움직이는 방식이 비장애인과 다르다. 기성복을 입을 수 없다는 뜻이다. 기준을 달리해야 했다. 특수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둔 부모들의 도움을 받아 장애인에게 맞는 6가지 표준 규격을 정했다.

박 대표가 만든 옷 중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캥거루처럼 배 부분에 주머니를 달아놓은 바디슈트가 그것. 주머니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그는 “주머니 부분은 배에 관을 삽입해야 하는 장애인을 고려해 만든 것”이라며 “우리나라에서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브라 슈트의 경우에는 일반 여성들의 수요도 상당하다고 한다.

회사 운영에는 고민이 많다. 아무리 사회적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회사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매출이 일어나야 하는데 워낙 수요가 제한적이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격도 2만 원대에 불과하다. 큰 기대를 할 수 없는 수준이다. 처음에 여러 제품을 만들다 이제는 바디슈트류만 남기고 나머지는 일단 보류를 해놓은 실정이다. 박 대표는 “괜히 사업을 했나 하는 후회도 솔직히 하는 게 사실”이라고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박주현 베터베이직 대표가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장애인 전문 의류의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대신 장애인 관련 제품과 정보를 하나로 묶는 플랫폼 ‘베터 마켓’ 구축 작업에 나서고 있다. 그는 “딸을 키우면서 내가 못 한 것을 다른 사람이 해결할 수도 있고 서로 필요한 정보들을 공유할 수도 있는 도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며 “현재 정보기술(IT) 업체 등과 손잡고 내년 론칭을 목표로 작업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박 대표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닌 비장애인과 신체적 조건이 다른 사람으로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다. “몸이 불편해도 사랑을 받는 아이와 아무리 몸이 멀쩡해도 부모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누가 더 장애가 있는 아이일까요. 장애인라는 것 자체가 편견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장애인도 얼마든지 사랑받고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그런 생각을 우리 사회가 갖기 바랍니다.”
글·사진=송영규 기자
sk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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