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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年生 ESTJ의 슬기로운 은퇴생활···“체면 버리고 아마추어처럼”

■진영호 전 두산캐피탈 대표이사

일주일 포트폴리오 만들어 날마다 다른 일

파크골프·노르딕워킹·바이크·스키까지

“꼰대스럽지 않은 적절한 조언, 시니어 책무”



대기업 금융계열사 대표를 지낸 진영호(65·사진) 대한당구연맹 부회장은 지난해 이맘때 자신의 경험담을 담은 ‘어른의 재미 : 버릴 건 체면, 잡을 건 균형’을 펴내고 ‘작가’라는 직함을 하나 더 달았다. 말단 직원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CEO)까지 30년 넘는 직장 생활도 모자라 대학 강의, 기업 사외이사를 거쳐 체육계에서 2년 넘게 봉사하는 그에게 ‘은퇴’라는 말은 너무나 먼 단어 같았다. 지금도 일주일 간 요일 별 할 일을 정해둔 그를 만난 건 지난 14일 금요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였다. 그의 스케줄 상 ‘업무’를 처리하는 금요일 일정과 일정 사이 빈 틈을 활용해 겨우 볼 수 있었다.

- 만나서 반갑다. 간단히 자기소개를 해달라

“작가 진영호다. 책을 썼으니 작가이기는 한데, 사실 ‘백수’다.(웃음) 그런데 좀 바쁜 백수다. 대한당구연맹 부회장으로 4년 임기의 절반 정도 채웠는데, 무보수 명예직이라 사실상 봉사다. 영어와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국제 행사나 다른 나라와 교류 같은 업무를 맡고 있다. 연맹 일은 항상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 사안이 있을 때 챙긴다. 그 외의 삶은 여느 은퇴자라고 보면 된다.”

- 금융회사에 오래 있었는데 어떤 계기로 당구연맹에서 일하나.

“현재 회장과 인연이 있었다. 당구가 국제스포츠여서 대외 활동에 내 역할이 필요했다. 지난해 당구 월드컵도 우리 한국에서 열렸는데, 2030년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으로도 채택됐다. 앞으로 숙제는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이다. 우리 세대가 대학 다닐 때 당구를 많이 쳤고, 나 또한 좋아하고 즐기는 것도 사실이다.”

- 은퇴자 같지 않고 많이 바빠 보인다.

“일주일 간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월요일은 작가로 산다.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자료도 수집한다. 화요일은 강의를 나가는 날이다. 최근에는 전라북도 익산에 내려가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강의했다. 유튜브 채널에도 나간다. 수요일은 중국어 공부에 집중한다. 영어나 일어는 충분히 소통이 가능한 수준인데 중국어까지 해서 나중에 손주를 가르칠 계획이다. 목요일은 팝송을 배우고 금요일은 연맹일과 더불어 기업 사외이사 업무 등 말 그대로 일을 한다. 주말은 직장인처럼 쉰다. 토요일은 골프나 당구, 자전거, 스키 같은 운동을 하고 일요일은 근처 율동공원을 돈다.”

- 계획적으로 사시는 걸 보니 MBTI가 보인다. 이유가 있나.

“ESTJ(외향·현실·논리·계획)다. 내 신조 가운데 하나가 ‘주사파가 되지 말자’다. 여기서 말하는 주사파는 일주일에 4번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만 하면 만나는 사람도 같다. 매일 붙어 있으면 싸운다. 이 나이가 되면 더 그렇다. 싸우면 후회하고 우울증이나 자괴감도 생기고. 그래서 하는 일을 다양하게 했다. 포트폴리오가 여러 개면 만나는 사람도 다 달라진다.”



- 책에서 아마추어의 자세를 강조했는데 지금도 그렇게 사시는가.

“체면을 버리고 아마추어로서 도전할 때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골프를 30년 쳤다. 싱글 정도 실력인데 요즘은 파크 골프를 시작했다. 골프에 비해 시시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굉장히 재미있다. 비용은 골프의 100분의 1이고 채 하나만 들고 지하철 타고 가 즐길 수 있다. 스키도 한 30년 탔는데 최근에는 노르딕워킹(스틱을 사용해 걷는 운동)을 시작했다. 나이에 따라 골프에서 파크골프로, 스키에서 노르딕 워킹으로 이렇게 새로운 것을 해보며 삶에 변화를 주고 있다. 오토바이도 타보고 싶은데 너무 위험하다는 만류가 많아 머지않은 시기에 자전거로 인천에서 부산까지 가볼 생각이다. 은퇴자 교육·액티비티 프로그램 ‘위 스쿨’ 1~3기로 활동하면서 ‘초심자’로서 스마트폰 동영상 편집이나 식물 기르기 같은 익숙하지 않은 활동들을 즐겼다.”

- 인간관계, 특히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방법도 눈에 띈다.

“젊은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공부가 필요하다. 적절한 조언을 ‘꼰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하는 게 시니어의 도리이자 책무인 것 같다. MZ 세대나 주니어에게 꼰대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소통 자체를 단절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정도 적절한 가이드 제시는 필요하다는 말이다. 젊은 세대도 선배나 현인의 이야기로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경우가 많다. ‘꼰대 같지 않은 조언’은 어려운 게 맞다. 이를 위해 우리도 젊은 세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해야 한다. 거창한 사전공부가 아니라, 독서만 해도 주니어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부드럽게 소통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 책을 펴낸 지 1년이 지났는데 어떤 변화들이 생겼나.

“책에 재미있게 균형 잡힌 삶을 즐기라고 말했는데, 써 놓고 보니 스스로 거짓말쟁이가 되지 않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실천하고 있다. 이런 약간의 스트레스가 삶의 활력을 높이고 더 알차게 살도록 돕는 것 같다. 책을 보고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도 들어왔다. 강의 때문에 20년 전에 손 뗐던 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도 다시 다루기 시작했다. 30년, 40년 만에 책을 보고 연락한 지인들과 오랜 만에 만난 것도 큰 변화다.”

- 오랜 기간 금융업계에 몸담았는데 같은 시니어들에게 재테크 조언을 한다면

“60대 이후는 큰 돈을 벌기는 어렵다. 우리 시니어들의 재산 비중을 보면 부동산에 80~90%를 담아 두고 현금이 없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 비중을 적극적으로 절반까지 줄여 현금을 늘리는 게 맞아 보인다.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경제활동도 추천한다. 재산 축적보다는 삶의 재미를 위해 해볼 만 하다. 이렇게 쓸 수 있는 현금을 기반으로 적절한 관계와 활동, 때에 따라서는 자신 만을 위한 가치소비도 즐길 줄 알아야 한다.”

-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한 달 간 자원봉사를 했다. 스키도 제법 타고, 외국어도 할 수 있어서 나한테 딱 맞았다. 자원봉사자는 경기장에도 들어갈 수 있는데 사실 혜택이 어마어마한 거다.(웃음) 우리나라에서 다음에 열릴 올림픽은 30년은 지나야 할테니 어려울 것 같고, 내년에 평창에서 열리는 청소년 동계올림픽에서 한 번 더 봉사하고 싶다. 버킷리스트다.”




임진혁 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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