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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후 살아남는 비결 '變(변)'···“화려한 경력은 과거일 뿐”

■이명조 '아빠는 N잡러' 운영자

LG전자 출신 '중국 전문가'

재취업 자신했지만 실패 후 현실 인식

전직 교육 '열공' 후 만능재주꾼으로

바리스타·로스터·도시해설가에 유튜브까지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변화해야 길 열려"

이명조씨가 그의 커리어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정예지기자


“'꽃 피던 그해 달빛'이라는 실화 기반의 중국 드라마가 있습니다. 폭삭 망한 집안을 일으켜 세운 ‘주영’이란 인물에게 누군가 성공 비결을 묻자 이렇게 답하죠. ‘變(변)’.”

變은 중국어로 변화라는 말이다. 지난 12일 서울 종로에서 만난 이명조(67·사진)씨는 퇴직 후 살아남기 위해 제일 중요한 것으로 ‘變’, 즉 변화를 내세웠다.

퇴직 후 중국 전문가에서 N잡러로

이명조씨는 1984년 LG전자에 입사했다. 이후 2002년 상하이 구매 지사로 파견돼 지사장까지 올랐다. LG전자에서 퇴직하고 중국 현지 업체에서 10년을 넘게 더 일했다. 그의 경력 총 32년 중 중국에서 일한 시간만 15년. 일명 ‘중국 전문가’로 통했다.

그는 2017년 1월 은퇴를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별다른 퇴직 준비는 하지 않았다. 대기업에서 지낸 이력과 중국에서 일한 15년 세월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바로 중소기업 8곳에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보며 제2의 인생을 그렸다. 그런데 합격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현실을 깨닫는 데 딱 두 달이 걸렸다. 이 씨는 “면접에서 이력이 화려하다며 좋아하는데도 떨어졌다”며 “면접을 복기해 보고 상담도 해본 결과 중소기업에서도 고문 역할을 해줄 임원을 볼 때 55세 정도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운 좋게 정년퇴직을 했지만 요즘에는 50대 초에도 많이 퇴직하다보니 실무자로서도 고문으로 두기에도 나이가 많았나 싶다”고 덧붙였다.

봄쯤부터 그는 바로 노선을 바꿨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 노사발전재단 등 중장년 재취업 관련 기관의 문을 두드리며 분야를 가리지 않고 재취업 교육을 수강했다. 이 씨는 “마침 제가 2017년도에 한국에 돌아왔을 때 퇴직한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많았다”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도 2016년 설립되는 등 지원이 활발해질 때가 그때였는데 개인이 열심히 해야 하고 사회 환경도 받쳐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명조씨가 모아둔 ID 카드./이명조씨 제공


도시 골목길 해설가, 커피 로스터, 학교안전지원단, 영상 제작, 중국 문화 강의 등 평생 해보지 않은 일들에 도전했다. 그동안 경험한 직업만 16개가 넘어간다. 그는 작은 일자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의 생활신조는 '변화(change)는 즉 기회(chance)'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변화하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고 그는 믿었다.

그렇게 5~6년 지내다 보니 ‘만능 재주꾼’이 됐다. 이제는 인스타그램,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제페토 등도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아빠는 N잡러’라는 이름으로 유튜브도 스스로 운영한다. 2021년 성균관대학교 캠퍼스타운에서 주관한 ‘신중년, 열정을 기록하다’에서도 그가 낸 영상 과제물이 1등을 차지했다. 서울디지털재단의 ‘어디나 지원단’에서 IT 강사로도 3년째 활동하고 있다. IT 기기 사용이 익숙하지 않은 또래 중장년에게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 등의 사용법을 가르쳐 주는 게 요즘의 낙이다.

창직을 위해선 ‘트렌트 파악’이 관건

이명조씨가 빼곡하게 찬 캘린더를 보여주고 있다./ 정예지기자


그는 매일 6시에 일어나 그날 할 일을 정리한다. N잡러인만큼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하다. 요즘도 그는 지자체 및 각종 기관의 공고 페이지를 10곳은 넘게 정기적으로 들여다본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스타벅스에 가는 날도 정해져 있다. 혼자 생각 정리를 할 때면 저가 커피 브랜드를 찾지만 한 달에 2번은 꼭 스타벅스에 간다. 이 씨는 “중장년이라고 중장년만 뭐 하고 사는지 봐선 안 된다”며 “요즘 2030은 무얼 하며, 어떻게 살아가는지도 봐야 ‘요즘은 메타버스가 유행하는구나, 지금은 챗GPT가 유행하는구나’하고 트렌드를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이명조씨는 최근 챗GPT에 빠졌다. 창직의 기회로 연결하기 위해 2월부터 챗GPT를 공부하고 직접 활용해보면서 전자책 ‘챗GPT를 활용하니 일이 보이네’란 전자책을 출간했다.

“그냥 열심히 공부만 하는 게 아니라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죠. 배운 걸 가지고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계속 이야기하고, 강의계획서나 강의자료도 만들어 보는 거죠. 거기서 바로 창직의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은퇴를 앞둔 4050을 위한 조언, ‘취미’와 ‘5°’

그는 창직을 위해서라면 딱 2가지를 명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첫 번째는 취미로도 창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씨는 취미를 기반으로 3가지 일자리를 만들었다. 커피를 좋아해 상하이에 있을 때 카페를 운영한 경험을 살려 한국에서 자격증을 딴 뒤 바리스타로 일했다. 6개월은 커피 원두를 볶는 로스터로도 일했다. 도시해설가로 활동할 때는 정동길에서 커피 역사를 설명한다.

두 번째 조언으로 그는 인생 전반부 30년 동안 만들어 둔 경력을 딱 5°(도)만 방향을 비틀어 보라고 전했다.

“지자체나 각종 교육 기관에서 중국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중국에서 15년 동안 비즈니스를 했던 경험을 내려두고 문화 강사가 된 거예요. 처음에는 15분짜리 강의였지만 강의를 거듭하며 나중엔 8회차까지 늘어났지요.”

‘N잡러’이지만 그중에서도 꾸준하게 하고 있는 일을 뽑는다면 바로 강사 일이다. 앞서 언급한 2017년 비영리 단체 ‘지혜로운 학교’에서 진행한 15분짜리 중국문화 강의를 시작으로 LGU+, 서울시50+재단, 삼성도서관, 안양시, 오산시 등에서 중국문화나 인생2막 설계 노하우를 강의했다.

그는 지역에 내려가 카페를 운영해 보고 싶다. 노하우와 경험이 풍부한 시니어들을 각 분야에서 모아 카페를 차리고, 중장년 취미나 일자리 정보가 부족한 곳으로 가 제2의 인생을 고민 중인 중장년에게 각자의 노하우를 전해주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는 그의 이름 밝을 명(明), 도울 조(助)처럼 누군가를 앞날을 밝히는 데 도움을 주는 삶을 꿈꾼다.
정예지 기자
yeji@lifejum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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