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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일자리를 얻게 됐다. 다름아닌 챗GPT 덕분에

[인생2막 디지털 유목민으로 살아가기]<17>

■정남진 시니어 소셜미디어 마케터

/최정문 디자이너


올여름 무더위가 시작될 즈음이었다. 오랫동안 교류해 온 한 업체의 대표님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하나 받았다. 일자리였다. 국내 고객들의 의뢰를 받아 해외 아웃소싱 업체와 함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업무였다. 욕심이 나는 일자리 제안이었지만 꽤 복잡하고 난이도가 있는 것 같아 적잖게 주저가 됐다. 무엇보다 나를 망설이게 했던 건 영어 소통이었다. 모든 커뮤니케이션을 이메일과 ‘왓츠앱’이라는 모바일 메신저로 진행해야 하는데 이런 실시간 소통을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 며칠을 고민하다가 문득 챗GPT를 떠올렸다. 챗GPT를 활용하면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한 자신감이 생겼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대중에게 본격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지 1년 남짓이 돼간다. 이제는 거대한 물결이 되어 세상을 휩쓸고 있다. 그럼에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 놀라워하고 감탄만 했을 뿐 정작 나의 생업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볼 생각은 못 했던 것 같다. 챗GPT가 시니어가 된 나의 일자리에도 활로를 열어줄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한 번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다음날 그 대표님에게 연락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나로서는 큰 결단을 했다.

업무가 시작됐다. 해외 업체 담당자에게 첫 작업을 의뢰하고 난 후 3일 만에 드디어 첫 메일을 받았다. “Please review and confirm if these are correct” 이런 문장이 왔다. 완성한 작업물에 대해 컨펌해달라는 건데, 어떻게 답변해야 할까. 그냥 “I confirm it” 이렇게 하려니, 어쩐지 ‘내가 컨펌하노라’ 이런 분위기가 떠올라 부담스러웠다. 늘 쓰던 번역 앱도 이럴 땐 도움이 되지 못했다.

챗GPT에게 도움을 청했다

챗GPT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간의 상황을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면서, 해외 파트너에게 배려의 마음을 담은 표현을 하나 써 달라고 하니 이런 문장을 제안해 준다. “Yes, everything looks correct. I appreciate your efforts on this” 훨씬 더 편안해 보인다. 첫 작업 의뢰, 첫 완성물 수령, 첫 컨펌까지, 챗GPT 덕분에 비즈니스 소통은 순조롭게 출발했다. 평생 늘지 않았던 나의 어설픈 영어 실력이었지만 챗GPT 덕분에 대도약을 한 듯했다. 이후 해외 업체와의 영어 소통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됐다. 모두, 챗GPT 덕분이다.

영어 소통의 벽은 이렇게 넘어가나 했는데 이번에는 어려운 전문용어들이 툭툭 튀어나온다. 해외 업체 담당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들도 꽤 낯설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더 젊은 전임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지만 질문도 일주일을 지나니 상대의 눈치가 보인다. 그냥 하루 종일 챗GPT 앱을 열어놓고 AI에 물어보는 게 더 마음이 편했다. 무슨 질문을 던지든 말 그대로 AI는 척척박사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챗GPT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대화의 맥락을 이해한다는 것이다. 맥락을 파악하고 있으니 ‘인간’ 전문가와 대화하는 것과 똑같다. 기존의 검색 환경에서는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나의 고민, 나의 넋두리까지 다 이해하고 받아주고, 업무 과정에서 수시로 등장하는 나의 문제들을 99%까지 해결해 주고 있는 것 같다. 이 정도면 가히 ‘AI 업무혁명’이라고 해야할 듯하다.

AI 덕분에 나의 역량이 ‘증강’되다

이 일을 시작한 지 이제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주변으로부터 ‘일 잘한다’는 칭찬까지 듣게 됐고, 국내 고객들로부터는 ‘유능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게 됐다. 사실 이 업무 분야에서 나는 여전히 ‘초보’일 뿐인데, AI 덕분에 나의 역량이 갑자기 ‘증강’된 것이다. AI 이전의 나와 AI 이후의 나는 이렇게 달라졌다.

오늘도 챗GPT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면서 곰곰이 생각해 본다. 지금 이 업무에서 어디까지가 나의 역량이고, 어디까지가 AI의 역량일까. 그리고 AI가 지금보다 더 발전하게 된다면 나의 역량 중 어느 부분까지 AI에게 잠식을 당하게 될까.

전문지식 등 업무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해 신속하게 답을 내는 건 AI가 탁월하게 잘한다. 그리고 앞으로 더 잘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목적과 목표를 이해하는 일, 국내 고객과 해외 업체 직원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거기에 맞는 소통을 하고 배려하는 일, 그리고 AI와 협업하는 일, 이런 분야는 여전히 '인간'인 내가 더 잘한다. 하지만, 이 또한 아직은 그렇다는 것이고, AI가 더욱더 발전을 거듭해 가면 나의 현재 '우위' 영역도 언젠가는 AI에 잠식당할지 모를 일이다.

AI와 협업 역량 쌓아가기

이제 문제는 시간을 버는 일일 것 같다. AI의 성장세를 지켜보면서 끊임없이 나의 '우위' 분야를 찾아내는 일, AI와 친하게 지내면서 AI와의 협업 역량을 쌓아가는 일, 어쩌면 그게 AI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지혜가 아닐지 생각해 본다.
정남진 기자
contents@rni.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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